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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5 20:08
[군대]
하루종일 집에 있으려니, 문득 배가 고파졌다.
냉장고와 찬장을 이리저리 들쑤시던 중, 내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었다.
네스퀵!
아 네스퀵...
군 생활 중 내 눈에서 피눈물을 쏟게 한 그 네스퀵이다.
흠? 네스퀵? 피눈물?
여기까지 보고 그 네스퀵이 자기가 생각하는 그 네스퀵이 맞나 라고 의아해하시는 분들, 그 네스퀵이 맞다. 그리고 그 네스퀵 때문에 내가 피눈물을 흘리게 된 것도 맞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네스퀵 때문에 군생활동안 피눈물을 흘리게 되나. 네스퀵을 보자마자 나의 그 한스러웠던 이등병 생활이 좍 흘러가누나. 군생활 다 끝난 판이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 잠시 썰을 풀어 보도록 하겠다.
사건의 발단은 2008년 4월의 어느 날.
당시 나는 중대 막내 + 대대 막내로 한창 찌질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곧 전역하는 내 사수 겸 분대장. 성이 이씨였기에, 편의상 이병장이라고 칭하기로 한다.
하여간 이병장이 중대원을 좍 불러 놓고 자기 관물을 풀기 시작했다.
곧 전역할 사람이니까. 집에 가져갈 거 아니면 원래 다 주고 가는 거다.
한창 관물을 정리하던 도중, 네스퀵이 나왔다. 상당수가 남은 까닭에, 중대원 전체에게 각각 네스퀵 4개가 돌아갔다. 당시 좀 짬이 되던 사람들이야 문제가 없었겠지만, 한창 찌질하던 이등병인 나와, 내 한달 위 맞고참은 이걸 받아들고 똑같은 생각을 했다.
'아니 도대체 이걸 나보고 어떻게 먹으라는 거지?'
그렇다. 군대는 짬이 안 되면 밖에서는 줘도 안 먹는 그 네스퀵도 마음대로 못 먹는다.
왜냐고 묻지 마라. 왠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런거다.
누구한테 물어도 같은 대답이 나올 거다. 그냥 그렇다고.
군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그런 식이다.
'거긴 왜 그래?'
'원래 그래.'
짬이 좀 되던 내 고참들이야 알아서 눈치껏 잘 먹었겠지만, 나와 내 맞고참은 하염없이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아 시바 이거 X나 먹고 싶은데, 어떻게 먹어야 되지!'
그러던 중 이병장은 전역을 했고, 나는 더더욱 그 문제의 네스퀵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차라리 받자마자 먹었으면 좋았을 걸. 이병장과 같이 있을 때 먹었다면 커버라도 쳐줄 텐데.
상황예시
<이병장이 있을 때>
내가 네스퀵을 타먹는다.
지나가던 상병 A : 어 이 미친X, 이등병이 네스퀵을 타서 처먹고 있네? 어디서 났어?
나 : .......
이병장 : 야 내가 먹으라고 했어. 냅둬.
지나가던 상병 A : 예..........
<이병장이 전역한 후>
내가 네스퀵을 타먹는다.
지나가던 상병 A : 어 이 미친X, 이등병이 네스퀵을 타서 처먹고 있네? 어디서 났어?
나 : ...... 전역한 이병장이 먹으라고 줬습니다.
지나가던 상병 A : 걔 지금 있냐? 엉? 미쳐가지고. 밥먹고나서 네 위로 내 밑으로 다 모아서 나한테 와라. 아 미친 이등병이 개념이 없네.
이렇게 되는 거다.
고로 나는 더더욱 그 문제의 네스퀵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네스퀵은 관물대 안에서 썩어가고 있었는데.
때는 2008년 5월 23일 금요일. (젠장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날따라 아침 청소가 늦게 끝나서 밥을 늦게 먹었다. 밥을 먹고, 짬통을 정리하고 취사장에 손을 씻으러 갔는데, 같이 마지막으로 밥을 먹었던 내 동기가 취사장에서 걸어나오는거다.
그러고서 나에게 하는 말이
동기 : 야 우유 많이 남았던데 하나 먹자.
나 : 걸리면 X될텐데.
동기 :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아. 빨리 먹고 처리하면 돼.
동기의 꼬임과 우유의 유혹에 넘어갔던 나는 잽싸게 취사장에서 우유를 하나 집어들고 먹었다.
하나를 마시고 난 후, 아직도 많이 남은 우유를 보니 갑자기 네스퀵 생각이 떠오르며, 네스퀵이 격렬히 먹고 싶어졌다.
'하나쯤 가져가도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우유 하나를 건빵주머니에 몰래 넣어 왔다.
잠시 배경지식을 설명하자면, 원래 군대에서는 하루에 250ml 짜리 우유가 한 개씩 나온다. 물론 이게 휴가자도 있고 해서, 많은 경우 남게 된다. 이는 취사병들 혹은 취사병과 친한 몇몇 병사가 처리하게 된다.
보통 군인은 매 끼니를 '무조건' 먹어야 한다. 전투력 유지를 위해서는 먹는 것조차 의무다.
다만 이게 짬이 차고 병장쯤이 되면, (우리 부대의 경우) 밥을 안 먹을 수 있다.
누가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는 당연히 병사가 체크를 하기 때문에, 병장짬이 되면 밥을 안 먹고 싶을 경우, 아래 애들을 시켜서 안 먹는다고 전하라 말을 한 후, 우유나 부식이 나오면 부식만 챙겨 오라고 하는 것이 관례다.
병장이 되기 전까지는 어떻게 하건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었고, 따라서 병장이 아닌 계급이 우유를 생활관에 가지고 올라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금기였던 거다.
건빵주머니에 몰래 넣었고, 그 가져온 우유를 관물대 한구석에 몰래 짱박아 놓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아무래도 먹을 기회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슬슬 우유가 상했는지 여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운명의 날. 2008년 5월 25일 일요일.
이틀동안 우유에 네스퀵 타 먹을 기회만 보고 있는 내 자신이 어쩐지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아 ㅅㅂ 밖에서는 줘도 안 먹던 저 네스퀵이 뭐라고 내가 이러고 있나.
그러던 중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생활관에 깨어 있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다들 놀러 가거나 다른 생활관에 있고, 우리 생활관은 구석에서 잠을 퍼자고 있는 말년병장 둘과 나 뿐.
갑자기 이게 기회라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기회다. 이건 하늘이 내게 네스퀵을 먹으라고 주신 기회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네스퀵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주신 은혜 남에게 쓰며 살리오....
우유와 네스퀵을 조심스레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이등병인 내가 속편하게 뭔가를 먹을 수 있는 장소는 화장실 칸밖에 없었다. 다만 화장실이 꽤 멀었고, 주머니에 우유를 넣으면 아무래도 티가 확 나기 마련이다. 이등병이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닐 수는 없고, 화장실까지 가는 도중 고참에게 걸리면 아무래도 낭패였다.
이러한 계산도 있었고, 근 한 10분간 생활관에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기에, 잽싸게 생활관에서 타서 먹고 치우는 것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순간적으로 결단을 마치고, 우유와 네스퀵을 꺼내 놓고, 우유를 깠다.
그 순간....
생활관 문이 벌컥 열리더니 병장 하나가 들어왔다.
아......
아버지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
순간적으로 숨길 곳도 없었다. 어디 숨기겠는가. 들어오자마자 눈이 딱 마주친 상황에서.
그는 한번 피식 웃더니.
전 대대원을 소집했고.....
나는
비오는 날 먼지나게 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감하게 되었고,
그렇게 소년은 또 한걸음 어른이 되었다 한다.
젠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