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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9 19:43
[군대]
1. 안녕하세요. 나일레입니다.
내 포스트를 기다리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줄로 알지만, 너무 오래도록 글이 없으면 썰렁하니까. 별 이야기는 아니지만 생각나는대로 써 본다.
2. 근황
근황이랄게 별거 있나. 특히 말년병장의 군생활이라 하면 '이건 뭥미' 싶을정도로 단순하다. 편하지만, 편한만큼 지루하다. 시간이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지루하기 때문이다. 할 게 있으면 이렇게까지 지루하지는 않으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딱히 군인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쓰는 대부분의 문장이 '다나까'로 끝난다. 군대에서는 '다나까'로만 말이 끝나야 된다고 누가 그랬었던가. 사실 이건 밖에서 들은 이야기지 정작 안에서 들은 기억은 없다. 실제로 '~나'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거의 쓰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좋다.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어쨌든 별일없이 그냥 무난하고 지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얘기다. 아참, 혹한기 연기됐다. 고로 난 안 한다. Olleh~!
3. 군생활 이야기
휴가를 나가서 친구들과 (특히 군대를 안 온 친구들) 이야기를 하거나 술자리를 갖다보면 이야깃거리 떨어졌을 때 많이 듣는 질문이 '뭐 군생활 중에 에피소드 같은거 없어?' 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색하지는 않지만 적잖이 당황스럽다. 웹상에서 떠도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그런식으로 특별하게 에피소드가 생기는 사람이 적기에 에피소드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생활하면서 얘깃거리가 그렇게 많이 생기지는 않는다. 사실 생겨도 나중에 기억 못 할 때가 많고.
얘깃거리하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에피소드라고 거창하게 명명하기에는 민망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그당시에 '아 이렇게 군생활 얘깃거리가 생기는구나' 라면서 웅성거렸었지.
신교대에 막 입소해서 소대분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같은 소대 같은 침상 끝자리에 유난히 나이들어보이는 사람 하나가 있었다. 86은 거의 없고, 87, 88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우리 소대에서는 굉장히 튀는 사람이었다. 우리와 같은 신병일 텐데 이상하게 훈련이나 군대에 대해 아는 것도 굉장히 많고, 우리와는 다른 묘하게 여유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듣자니 유급을 했다고 했다. 신교대에 처음 들어가면, 교육훈련 제대로 안 받고 훈련성적이 저조하면 자대로 안 가고 남아서 5주간 다시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이른바 유급드립으로 신병들의 참여를 유도해내는 경우가 많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개드립도 그런 개드립이 없지만 우리가 뭘 알겠는가. 조교들이 분위기 좀 잡으면서 얘기하면 당연히 그런갑다 하면서 납득하는 개늅 꼬꼬마들이었는데.
그렇게 그는 유급훈련병 딱지를 달고 우리와 같이 1주간 훈련을 같이 받았다. 그런데 1주 후에 갑자기 그가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우리는 아는 바가 없었다. 갑자기 괴소문이 들려왔는데, 그가 훈련병이 아니라는 거였다. 당연히 우리는 그게 무슨 소린지 알지도 못하고 각종 추측만 하면서 있었는데.
어느날 그가 돌아왔다.
'중위' 계급장을 달고.
......
뭥미?
그렇게 높아보이던 조교가 깍듯하게 경례를 붙일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제대로 사태파악을 못한 채 '이건 뭥미?' 라고 다들 얼타고 있었는데, 초코파이며 음료수며 바리바리 싸온 것들을 뿌리면서 그가 하는 말이,
자기는 신교대에 처음 전입온 장교인데, 신교대 특성상 초임장교는 훈련병들의 생활을 1주간 같이 하는 게 관례라나.
의도는 알겠으나 좀 많이 짜증났었다.
일단 같은 훈련병인 줄 알았는데 배신을 때린 것 같아 짜증났었고, 우리가 앞으로 2년동안 구를 때 편한 생활을 할 것 같아 짜증났었고, 무엇보다 감히 나를 능멸한 것 같아 짜증났었다.
그렇게 그는 갔고, 우리는 4주를 더 굴렀다. 제길.
4. 파견
군단 훈련이 있어 대전으로 약 2주간 파견을 간다.
제길 왜 나야.
5. 인연
인연이 있어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을 읽게 되었다. 수필이라는 것은 소설이나 시와 같은 것과는 또 다른 멋이 있어 퍽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다. 작가는 아니지만,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문장 하나하나에서 배어나오는 그 막강한 필력과 내공에 경탄 또 경탄하였다. 이 정도는 써야 작가라고 할 수 있겠구나.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매 문장을 읽을 때마다 느끼며 괜스레 센티멘털해졌다. 작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이런 것과는 별개로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근자에 읽은 책들 중 가장 훌륭한 책이다.
6. D - Day
디데이 카운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줄어들지만 줄어들지 않는 듯한 모순적 기분을 느낀다. 숫자 자체는 줄어드는 것 같은데, 실제로 기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하니까. 47이면 뭐해 젠장.
7. 프리셀
군대 오기도 훨씬 전에 쓴 포스팅인데 아직까지 꾸준히 읽히는 내 프리셀 포스팅.
잘 건 포스팅 하나 열 잡글 안 부럽다인가. 몇몇 회심의 포스팅으로 먹고사는 블로그인데. 안에서는 그런 걸 쓸 수가 없어 안타깝다. 참고로 여기서도 나는 종종 프리셀을 즐긴다. 덕분에 일취월장하는 실력. 이제 웬만큼 어려운 판이 아니고서야 한방에 클리어할 정도가 되었다. 프리셀 잘해봐야 별거 없지만. 쳇.
이와 같이 롱런하는 포스팅을 몇가지 더 계획하고 있는데, 이는 적절한 사진이 덧붙여져야 하기에 전역 후로 미루도록 한다.
8. 그럼 파견 갔다올때까지는 인터넷 못하니 다들 잘 있으면 좋겠다. 아듀.
아듀하니까 생각났는데, 얼마전에 후임병 하나가 아듀랍시고 써놓았는데 그 스펠이 Adue였다. 아 제발 모르면 한글로 쓰던지. 괜히 아는척 깝치다가 나에게 쪽만 당했다. 저런 거 볼때마다 내가 쓴것도 아닌데 괜스레 낯이 뜨겁다.
참고로 아듀는 Adieu. 프랑스어다. 뜻이야 익히 잘 알테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