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한번 더 한다네요.
꼬이네요 정말.
아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징징대는 내용이니 읽고 싶으신 분은 읽으시고,
징징대는 게 싫으신 분은 살짝 스킵하셔도 좋습니다. :)
징징
말 그대로다. 블로그가 신세한탄 하는 공간은 사실 아니지만서도,
오늘 군생활 자체에 심각한 회의를 느껴서 글을 쓴다.
오늘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혹한기는 통상적으로 2월에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12월로 앞당겨서 한다는 것.
원래 그렇게 하게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단 XX참모 머리에서 나온 즉석 발상인데
이게 이상하게 지지를 얻으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되었단다.
어?
바뀐 일정으로 하면, 내가 말년휴가 출발하는 바로 전주에 혹한기 훈련을 하게 된다.
아니 이건 무슨 개소리여.
혹한기는 당연히 우리들 전역 후에 하는 거라고, 그 사실에 대해 단 0.0001%의 의심도
하지 않았던 나와 내 동기들은 바로 비상대책회의에 들어갔으나, 대대 인사참모 앞에서
모든 안건은 격침되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 짤없이 뛰는 것.
아......
아......
군생활에 심각한 회의가 들었다.
이 조직은 나를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으려 하는구나.
말년에, 원래 전혀 갈 이유가 없는 파견도 2주나 가야하고,
복귀하고 1주 있다가 바로 혹한기를 뛰어야 한다.
내가 휴가를 갔다 오기 전만 해도 상황은 이랬다.
'아 이제 진지공사만 끝나면 군생활동안 큰 훈련은 하나도 없구나. 슬슬 끝이 보인다.'
휴가 복귀하니까 바로 들리는 말이,
'최규현 병장님. 대전으로 4일동안 파견가신답니다.'
4일은 별거 없겠지 싶어서 그냥 까짓거 갔다오지 싶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지겨운 일이었다. 하루 14시간을, 아무런 하는 것 없이,
한 자리에 계속 앉아있어야 한다. 책도 못 본다. 훈련이니까.
4일 하고 끝이면 좋겠는데, 이건 예행연습이고 실제 훈련을 11월 말에 또 2주간,
주말 없고 24시간 풀타임으로 인원을 2교대로 돌리면서 훈련한단다.
장난하나 이거.
여하간 휴가 갔다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겨, 굉장히 심란한 상태에서 진지공사를 했었다.
진지공사 끝나고, 아 이제 저 파견만 갔다오면 군생활에 큰 훈련 없구나.
싶었는데 이제 혹한기를 한다네.
아 제발.
이정도 써먹었으면 됐잖아?
내가 더이상 뭘 더 어떻게 해주면 되냐.
내가 이렇게 해도, 진짜 하는거 X도 없이 묻어간 후임 애들보다 포상이 적다.
한두달 후임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이제 막 상병 달거나 일병인 애들도
나만큼 포상 있는 애들 많다.
나랑 비슷하거나 내 동기들?
후임이 저지경인데 말할 게 있겠냐?
포상 못 쓰고 나간다고 징징대는 것들이 주위에 널렸다.
나는 휴가가 없어서 2차정기 이후, 말년까지 외박이고 휴가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손가락 빨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돈 더 주나? 그것도 아니고.
전역 일찍 시켜주나? 그것도 아니고.
다른 일 빼주나? 아니. 나 진지공사 때 풀로 다른 전투병 애들이랑 똑같이 삽질 다 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우리 부대 내에서 지금까지 내가 봤던 모든 선후임을
다 합쳐도 나보다 군생활 힘들게 하고 간 사람 몇 없다.
역시 또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난 정말 업무나 임무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인수인계
받은 것 없이 맨땅에서 지금의 체계가 잡힐 때까지 혼자서 고군분투한 사람이다.
아니 이 모든 체계를 내가 만들었다.
왜냐고?
내 사수 2명 더블 ㅄ 아무것도 아는 거 없음 크리티컬 +
그나마 매우 유능했던 중대장 때문에 굴러가고 있던 업무가 중대장의 전역으로 인해
맥이 끊겼다.
초임 장교와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처음 오기는 나나 이 사람이나 마찬가지.
결국 둘 다 아는 건 아무것도 없고, 맨땅에서 지금 어느정도 기틀을 잡아서 굴리기까지
정말 많이 고생했는데, 역시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말 한마디 던지고 가면
다 되는 줄 알고, 그걸 하기 위해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생각도 안 한다.
해놓으면 당연한 줄 알고, 못 하거나 늦어지면 욕하고, 능력 운운하고.
아 군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무조건적인 충성심?
지랄 똥처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될 게 아닌가.
가는 건 있지만 오는 건 없는데 세상 어느 누가 미쳤다고 열심히 하고 싶겠냐.
모르겠다.
나 안해 이제.
어떻게 되도 모른다 난.
이번 건으로 인해 그동안 쌓여있던 감정의 리미터가 날아간 느낌이다.
비등점을 넘었다고 해야하나.
여하간 못하겠다 훡.